생활철학/생각거리

나의 꿈보다 중요한 사회가 바라는 꿈

라라윈 2020. 5. 25. 23:43

삶의 주인의식 #3 집단주의 사회의 꿈

꿈이 뭐냐고 물을때 백수가 꿈이라거나 여행하는 것이 꿈이라고 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 놀고 싶지. 다 여행하고 싶고... 누군 일하고 싶어서 하니? ㅉㅉ" 또는 "그래 그것도 꿈이 될 수 있지. 그렇지만 좀 더 의미있는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반응입니다. 이런 반응이 싫으면 답을 조금 바꾸어야 합니다. 건물주로 월세 받는 백수가 되고 싶다 거나, 여행하면서 글을 쓰는 여행작가가 꿈이라고요.

어째서 백수는 안 되고 건물주로 월세 받는 백수는 꿈일 수 있을까요? 왜 여행하는 것은 안 되고, 여행작가를 하는 것은 꿈이라 할 수 있을까요? 꿈을 직업으로 한정짓는 속에는 숨은 전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회에 도움이 될 것.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해가 되지 않을 것.

둘째, 돈벌이가 될 것. 자기 생계를 유지하여 타인에게 손 내밀지 않을 수 있을 것.


자기 혼자 좋은 것으로는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혼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꿈이라 하면, 대뜸 “어떻게 사람이 좋은 것만 하고 살아?” 라는 반응을 마주하게 됩니다. 조금 고상하게 “나도 생계 걱정 없다면 자원봉사 하면서 세계를 다니고 싶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잖아.” 같은 반응을 마주할 수도 있고요.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꺼낸 사람은 호프스테드(Hofstede)입니다. 이 분은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 기준이 개인에게 있는지 집단에 있는지에 따라 구분을 했습니다. 행동 기준이 집단에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을 할 때 이것이 집단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일 인지를 먼저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좋다고 멋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이렇게 생각할지라도 사회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통념, 사회적으로 좋아하는 행동에 대해 먼저 생각합니다. 꿈에 대해서도 "자기 가슴이 뛰면 하잘것 없는 것도 꿈 아닌가요?!" 라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꿈이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직업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 집단주의의 영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한국 하늘을 덮은 미세먼지를 벗어날 수 없듯, 한국사회에 살면 한국사회를 덮은 문화의 영향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ㅠㅠ


좀 더 구체적으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해 연구를 한 것은 트리안디스(Triandis)였습니다. 그리스 사람인 트리안디스는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한국처럼 가족들이 함께 하고 이웃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미국은 가족보다 개개인이 중요한 것이 독특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단주의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의 특징에 대해 파고들어 정리를 해 놓았습니다.


개인주의 문화는 계약 기반으로 이해를 하나,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천륜을 기반으로 이해합니다.

개인주의 문화인 사람은 개인과 집단을 별개라 생각하고, 개인이 집단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 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개인의 즐거움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 즐거울 수 있도록 계약관계를 맺습니다. 계약을 했으나 계약이 잘 이행되지 않거나, 집단과 함께 했더니 이익보다 스트레스가 크다면 쉽게 집단과의 관계를 끊고 개인으로 돌아갑니다. 반면 집단주의 문화인 사람은 개인과 집단을 동일시 합니다. 내가 곧 가족이요, 사회요, 우리 회사요, 이런 식입니다. 집단활동을 하는 것은 개인의 즐거움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뜻처럼 여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이 집단에서 살아가는 것이 즐겁지 않거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지 않습니다. 아니, 끊지 못합니다. 두 번 볼 일 없을지도 모르는 회사 사람과 연을 정리하는 것조차 집단주의 문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듭니다. 우리는 사람 인연 어찌될 지 모르고, 어디서 다시 만날 지 모른다고 생각하죠....


개인주의 문화는 집단보다 개인이 중요하므로, 개인의 이익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경쟁 쇼 프로그램만 봐도 우리와는 문화가 사뭇 다릅니다. 그들은 “에이미가 이번엔 잘했지만 운이에요. 내 실력이 훨씬 좋다고요. 이 프로의 우승자는 내가 되어야 해요. 쟤가 되면 안돼요. 그건 심사위원이 눈깔이 삔거에요.” 라는 소리를 거침없이 합니다. 우리나라는 설령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화면에 대고는 “제가 낮은 점수를 받아서 좀 섭섭했지만 에이미가 정말 잘 했으니까요. 에이미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같은 착한 소리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대놓고 챙기는 것에 거부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이 중요합니다. 새마을 운동, 서독 광부와 간호사 수출을 통한 외화벌이, 월남전 파병, 사우디 아라비아 건설 노동자 파견 등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여 한국이 잘 살게 되었으면 된 거였던 거지요. 개개인들이 얼마나 개고생을 했건, 희생을 했건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중요할 뿐입니다.


이런 희생 덕분에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나라 뿐 아니라,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 회사가 희생했고, 회사가 잘되기 위해서 가정이 희생했고, 가정을 위해 아버지 어머니들이 참고 살았고, 아이들은 묵묵히 따랐습니다. 어른들이 집단을 우선 시 하며 사셨다고 해서 자녀세대, 어린이들에게도 똑같이 살라고 강요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리 살았어도 너는 더 행복하게 살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문화란 미세먼지 같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그 속에 숨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요즘 세대가 자신의 꿈을 쫓겠다고 이야기하며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것보다 자신의 가슴만 뛰는 일을 찾아 나설 때는 익숙한 문화와 충돌하기에 생경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니라, 나의 작은 가슴만 뛰게 할 수 있는 일이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사회를 덮고 있는 문화적 가치에 저항하는 일입니다.

거창하게 사회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당장 ‘엄마 나 그냥 놀고 싶어’ 라는 말을 진지하게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바로 또래 친구도 설득시키기 어려운 건 아닐까요? 다 쉬고 싶다고 너만 쉬고 싶냐고, 그래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싫어도 하는거지, 정신차리라는 소리나 듣지 않을런지요. 참고로 개인이 내키지 않아도 사회적 기준에 따라 꾹 참는 것도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