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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정리 최대의 난제, 추억의 물건 정리하기

· 댓글개 · 라라윈

라라윈 생활 정보 탐구: 집정리 최대의 난제, 추억의 물건 정리하기

얼마 전 오랜만에 북한산 둘레길에 갔습니다. 단풍이 한창 예쁠때는 운동하기 귀찮아 뺀들대다가 오랜만에 갔더니, 이미 단풍이 다 떨어져 낙엽이 가득했습니다. 산에 와 본 적이 별로 없어,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특히 저를 향수에 젖게 만든 것은 곳곳에 떨어져있는 밤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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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13구간 송추마을길은 밤나무가 많은가 봅니다. 곳곳에 떨어진 밤송이들은 이미 요령 좋게 껍질을 벗기고 밤은 쏙 빼간 껍데기 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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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령껏 껍질을 벗기고 꺼내간 빈 밤송이를 보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를 따라 선산에 갔을 때 할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 기술좋게 지팡이로 밤송이를 살짝 누르고, 양발로 껍질을 벗겨서 속에 들어있는 알밤을 꺼내주셨습니다. 밤송이 몇 개를 벗겨서 예쁜 알밤을 꺼내주시면, 꼬꼬마의 손과 주머니는 이내 부자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0여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밤송이만 보면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할아버지와 엄청 살가웠던 사이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는 남자 어른들을 많이 무서워했습니다. 어릴 때 입도 짧고 말라서 어른들이 썩 좋아하시지도 않았고, 겁도 많아서 남자 어른들이 부리부리하게 노려만 봐도 움찔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는 호랑이 같이 무서웠습니다. 삼촌들도 할아버지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절대군주셨어요. 게다가 옛날 할아버지라 여자아이는 한 상에서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랬던 할아버지인데도 밤송이를 까주고, 예쁜 가지를 꺽어서 주시긴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꺽어준 예쁜 밤나무 가지와 감나무 가지는 집에 걸어두면 썩었습니다.

감은 너무 익어 툭 떨어져서 주변 물건과 바닥이 엉망이 되기도 했고, 밤나무 가지는 서서히 썩어 흉하게 변했습니다. 그래서 버려야 할 때면, 할아버지가 준 건데 버린다고 울고불고 했습니다. 그 가지를 버리면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버려질까봐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지를 버린다고 추억도 버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약 30여년간 밤나무, 밤송이만 보면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추억이라는 것은 꼭 특정한 물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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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집정리를 하면서 가장 괴로운 적이 '추억의 물건' 입니다.

그 추억의 물건을 보기 직전까지는 추억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추억의 물건을 버려 버리면 추억을 점화시키는 발화점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지금까지 받은 편지, 심지어 쪽지까지 다 모아서 가지고 있고, 얼마전에 보니 초등학교 시절 앙케이트 노트도 있고, 선물 받았던 포장지와 리본도 있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대학 시절 슬라이드 만든 것, 노트 필기한 것 들까지 무엇 하나 버리지 못하고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송이처럼 할아버지가 까주셨던 밤은 먹어치웠고, 꺽어주신 가지는 버렸어도 지금껏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추억의 물건이 없다해도 추억까지 버려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달리 보자면, 추억의 물건을 보지 않고는 단 한 번도 생각나지 않는 일이라면, 제 인생에 있어 몹시 소중한 추억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쓰여 도저히 건드릴 수 없던 추억의 물건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습니다.

저처럼 물건 못 버리는 병이 있는 사람은, 집정리가 가치관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도무지 정리의 진도가 나아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추억의 물건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귀하지만 쓰지 않는 물건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집정리가 되네요. 책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에 자극받아 시작한 청소가 벌써 한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 깨끗하고 쾌적한 집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집정리 끝판왕,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극치! 우리집엔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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