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멘붕, 교수도 학교 가기 싫다

라라윈 전공 직업 이야기 : 개강 멘붕, 교수도 학교 가기 싫다.

저는 교수가 아닌 시간강사 입니다만, 학생들은 시간강사, 겸임교수, 비정년트랙 교수, 정년트랙 교수 모두를 교수님이라고 하니 교수라고 해 봤어요.


개강인데....


와. 아. 너. 무. 신. 나. 요.

우. 와. 개. 강. 이. 다.

정. 말. 좋. 다. 우. 와. 개. 강.


개강 멘붕


개강 멘붕, 교수 >>>>>>>>>> 학생

학생시절에는 교수님들은 학교 오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수업 하고 싶어 환장한(?) 분들인 줄 알았죠.

제가 가르치는 교수 입장이 되고 보니, 교수나 학생이나 똑같이 학교 가기 싫습니다.


아니, 학생 때보다 더 가기 싫어요.

학생 입장일 때는 그냥 가서 앉아 있으면 되고, 지각이나 결석을 할 수도 있고, 컨디션 안 좋으면 썡얼에 모자 푹 눌러쓰고 갈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교수는 아프면 안 됩니다. 교수 한 명이 아프면 백 여 명의 학생들에게 개 민폐이므로 교수는 절대 아프면 안 돼요.

컨디션이 나쁘다고 생얼에 추리닝 입고 가도 안 됩니다. 교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 안구 테러를 하면 안 되잖아요... ㅠㅠ


"교수는 아파도 안 됨, 상태가 안 좋아도 안 됨. 늘 준비된 상태여야 함."


여기까지도 상당한 스트레스 인데, 이보다 더 큰 스트레스인 수업 준비가 남아 있습니다.


수업 준비는 '대충 아는거 이야기해주면 되겠지 뭐' 라고 했다가는 난리가 났습니다. 수업 준비 하루 한 것과 일주일 꼬박 한 것은 차이가 확 났어요. 수업 준비 대충하면 학생들 앞에서 발음 꼬이고, 그지같이 설명을 했습니다.


학생들 반응도 분명했습니다. 준비 열심히 한 날은 예시도 쬐금 재미있게 들고, 드립도 치고 하니 약간 웃기도 하고 반응이 있는데, 수업 준비 대충 해서 막 읽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드니까 수업 분위기가 싸늘했어요. 


"수업 준비 철저히 해야 함. 대충 하면 바로 티남."


한 번이 아니라 매 수업마다 열심히 준비해 가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상당 합니다. 실제로 제가 철두철미하게 준비해 간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죠........... ㅠㅠ


수업 준비가 걸려 있기 때문에, 교수일 때는 '학교측의 피치못할 휴강' 생기면 정말 행복했어요.

학생 때는 휴강하면 2~3시간이 생기는 거지만, 교수 때는 휴강되면 그 주에 준비한 강의를 다음 주에 하면 되기 때문에 2~30시간 이상이 생기는거라 좋았어요.


어쩜 이렇게 학생 때랑 똑같나 싶도록, 교수 입장에서도 똑같이 학교 가기 싫고, 똑같이 휴강되면 좋고, 일찍 끝나면 신났어요......

(물론 이건 철없는 초보 시간강사인 제 개인의 경우일 뿐일 수 있습니다)



의욕을 저하시키는 시간강사 처우

사람이 일을 즐겁게 할 때 돈이나 보너스 같은 외적 보상을 주면 동기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교수님이 알려주시길 이 연구 결과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켜 비판도 굉장히 많이 받았대요.


'좋아하는 일을 해도 돈을 적게 주면 할 맛이 안나는데 그건 뭐냐?'

'봉사활동, 환경보호나 사회운동 같은거 하는 사람이라도 자기가 좋아서 하지만 돈 적게 주면 의욕이 되게 감소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할거냐?'


등등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저자들은 꼬리를 내렸다고 합니다. 아이가 재미있어서 책을 읽었는데 부모가 용돈을 주면, 재미있어서 읽은게 아니라 돈 받으려고 한 것 같아 책 읽고 싶은 동기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재미있어서 한 일, 취미 같은 경우에는 이론이 맞아 떨어지지만, 일은 애초에 신나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을 주는 것이 의욕을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정정했다고 합니다.

즉,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일'인 경우에는 돈이나 보너스 같은 외적 보상을 더 주는게 오히려 동기를 높인다고 합니다.


장황하게 좋아하는 일과 돈 이야기를 한 이유는, 강사료가 정말 정말 짜기 때문이에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처럼 시간강사의 비애를 폭로한 분들이 계셨는데, 겪어보니 더 심각해요.


우선 박사까지 하려면 대학 등록금과 교육비를 꽤 많이 썼는데, 그에 비해 강사료는 쥐꼬리 입니다. 대학원 다닌 비용이야 제가 좋아서 다녔으니 논외로 치고, 시간당 페이를 계산해도 형편없어요.


강의는 3시간 강의면 준비시간이 최소 9시간 이상 걸리고, 강의 이후 학생들 출석 과제 등을 검토하는 시간이 3시간 가량 걸립니다. 즉 3시간 강의여도 최소 15시간 이상 일하는 상황인데, 이렇게 따지면 시간 당 임금이 최저 임금도 안 나와요.


비용만 형편 없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처우가 별로 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시간강사를 어떻게 감시할까에 혈안이 된 듯 했어요. 수업 끝나고 전산에 출석체크를 며칠 내로 등록하지 않으면 수업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서 강사료 안 준다고 하고, 걸핏하면 "감사 기간이니 수업 시간을 준수해 주십시오." 이딴 문자가 와요. 행여라도 시간강사가 시간 덜 채우고 돈 받아갈까봐 감시하는거죠. 대학 입장에서는 불성실한 교수자가 많아서라고 하지만, 못 미더워하고 감시하는 문자나 보내니 언짢아요.


서류도 아주 번거롭습니다. 먼저 계약에 앞서 서류를 두 번 내야 하더라고요. 지난 학기에 강의를 해서 제 서류를 두 번이나 받아 놓고도 이번 학기에도 서류 새로 내라고 하고요. 학부 석사 박사 전학기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연구 성과 기타 서류 등등을 다 준비하려니 번거로웠어요. (귀찮...)

그 밖에도 치사스럽거나 귀찮게 하는 요소가 소소하게 꽤 있었어요.


그냥 시간강사 최고의 처우는 "교수님"이라고 불러준다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왜 강의를 한다고 했을까?

개강 멘붕, 수업준비 스트레스, 형편없는 처우의 콜라보 상황에서 제가 강의를 왜 또 하겠다고 한걸까 진짜 멘붕이 왔습니다. 지난 학기는 대학 강의가 처음이니까 한 번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컸고, 이번 학기는 상황 알면서 왜 또 하겠다고 한 걸까요?


제가 스트레스 퐉퐉 받고 있는 걸 본 친구도 물었습니다.


"대체 왜 또 하겠다고 한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대학 강의는 (직업으로) 교수가 되고 싶거나 홍보를 하려는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합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것이 사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할 때 홍보효과가 큰 사람들에게 맞는 일이래요.

전 대학 교수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홍보할 사업도 없으니 저한테 맞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체 왜 한다고 했을까요....


그러나 후회해도 늦었습니다. 이미 개강날이에요.


개강 멘붕


개강 멘붕에 정신이 나가 있었어도, 이왕 하는 수업 근사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눈 떠보니 영하 6도네요. 3월 날씨가....

예쁘게 하고 가겠다는 계획은 제 몸뚱이를 지키겠다는 것으로 급 수정되었어요. 이제 예쁘게 보이겠다며 하늘하늘 원피스 같은거 입고 나가면 뼈 시려요. 기모 레깅스에 니삭스까지 챙겨 신고 따땃하게 하고 갔어요.


학교 가는 길 동안, 수업에서 할 말들을 연습했어요. 학교 가기 싫다고, 개강 멘붕이라고 징징대더라도.... 죄없는 학생들에게 폐 끼치면 안 되니까요... 개강 첫 날 수업할 것들을 되뇌이며 연습하다가, 문득 작년의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떠올랐어요.

정말 사랑스러워서 마지막에 기말고사 보는 날은 헤어지는게 아쉬워 눈물날 것 같았는데...

학교에 가더라도 마주치지 못할 것 같아 섭섭했어요.


마음을 비우고,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강의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섰습니다.

초입에서 제가 보고 싶어하던 아이들과 마주쳤어요. 반가워서 혼자 눈물 핑 돌아서 손을 흔들었는데, 저에게 보고 싶었다고 해 줬어요. 그 순간 행복지수가 폭발했습니다. (으엉! 이것이 개강의 행복!)


그리고 연이어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쳤습니다. 오늘 수업이 있대요.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너무 반가웠어요. 그 사이 접대 멘트가 늘었나 예뻐지신거 같다고 해주는 아이도 있고, 내일 모레 군대간다는 아이도 있고...

보고 싶었던 아이들과 만나, 우리 매주 오가며 만날 수 있겠다며 신나했습니다.


처음 강의하기로 하고 왔을 때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너무너무 뻘쭘했는데, 같은 학교에 또 오니 아는 사람이 있어 행복했어요. 개강해서 보고 싶던 얼굴을 만나는 행복이 쏠쏠했습니다. (급 개강해서 씐남)


이미 행복해진 상태에서 수업 들어갔는데, 첫 학기 첫 시간이라 초롱초롱.

몹시 사랑스러웠어요. 너무 귀엽고요.

교수님들께서 사랑스러움을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하신 것이 아닐까 심히 의심스러운 구성이었습니다.


방긋 엄마 미소 (이제 몇 년 지나면 진짜 엄마 뻘 될지도) 이모 미소 지으면 행복해졌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는 '이 사랑스러운 학생님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 드리나'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학교 가는길에는 개강 멘붕에 왜 또 수업을 하겠다고 했을까 후회했는데, 이래서 한 번 더 욕심을 내어 수업을 또 맡았던 것 같아요...



사랑스러운 것과 체력 소진은 별개

사랑스럽고 좋은 것과 저의 체력은 또 별개라.... 추운데 나갔다 몇 시간을 서 있었더니 집에 오자 방전이 되었습니다. 뜨듯한 바닥에 몸이 닿는 순간 녹아 버렸어요. 까무룩 잠을 자다 깨다.... 다음날까지 비몽사몽 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지난 학기에도 강의 하고 오면 체력 방전 되어서 다음날까지 누워 있었어요.....


정말 교수님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분들이신 것 같습니다. 저는 고작 몇 시간으로도 이러는데....


새삼 교수님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어야 하고, 열정도 있어야 하고, 지식도 있어야 하고...


교수님들 존경합니다.

학생 때 존경했던 것보다, 교수자 입장이 되어 보니 *1000000배 더 존경합니다.


결론은 제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길은 아닌 것 같으니,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사랑스런 아이들과 즐겁게 불태우고 와야겠어요.....

(이러면서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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